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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장

두번째 독서토론,<별모양의 얼룩> 김이듬

by 예또랑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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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리긔님이 열심히 발제해주시고,나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었던

그날 독서토론ㅎㅎㅎ (파일첨부)

이날 독서토론이 끝나고 이듬책방을 팔로우하기도했었지..

 

 

독서토론-별모양의얼룩 20.05.23 질의응답

 

독서토론-별모양의얼룩 (낯가리긔님발제).r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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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별모양의얼룩 20년5월23일 질의응답.r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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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집을 읽으며 여러분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과 와닿았던 이유를 들려주세요.

캣츠아이-제일 처음 실렸던 거리의 기타리스트부터 완전 충격적인 작품이었어요.
이건 2번의 대답도 될 수 있긴한데,개인적으로 이런 산문시들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외설적인 표현들이 너무 직설적이고...어딘가 어두우면서도 슬프고..
제가 좋아하는 사랑시나 인생시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 읽으면서 계속 놀랐는데
그래도 인상적인 작품들은 많더라구요. 딱 3작품만 뽑자면 저는

*별모양의 얼룩
시집의 제목이라 그런지 이시는 몇번 더 읽었는데,
여자의 사고사(?) 얘기를 하면서 "지방  뉴스가 방영되고  기차를 타고 가던 그들도 
앞부분이 무거운 문장의 자막을 읽게 될 것이다" 이 문구의 상황이 순식간에 그려져서
인상에 확 박히더라구요.또 반대로 비유법인 "제대로 꿰매지지 않는 기억은  비벼댈수록 스며들고  씻을수록 번져간다  어느새  늙고 추악한 소녀를 돌돌 말고 있다" 라는 문구도 좋았구요.무엇보다 제목이 제일 맘에 들었어요.

*.비슷하거나 아예 똑같을 것을
-금요일의 갤러리를 지나

제목도 소제목도 좋았는데,시 구절중
"지겨운 반복재생 모드로 이 세상 돌아가게 해놓고" 이부분이 딱 꽂혀서 인상깊더라구요
저도 바쁘면 바쁜대로 한가하면 한가한대로 늘 같은 하루를 살아서ㅎㅎ

*.나는 나무를 이해한다
이것도 인생에 대해서 잘 쓴 거 같아요.

책방장님-저는 <욕조들> 이라는 시에서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포르노그라피가 되지" 라는 구절을 꼽고 싶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통과하는 순간 이 시집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짧게나마 예측할 수 있어서 좀 각오하고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더 꼽자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워낙 강렬하고 압도적이라 오히려 <렌즈없이 본다는 거>라는 작품이 순한 맛으로 다가와서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곰곰님-와…다들 대단하시네요.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첫 문장부터 너무 어려워서 깜짝 놀랐어요. 이해가 안되서 계속 반복적으로 읽다보니 반 정도 읽었구요, 그나마 이해가 되던 시는 , '나는 나무를 이해한다'였습니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각도로 나무를 이해한다 

요즘 제가 계속 사람들을 판단하려고 해서 경계 중인데 그래서 눈에 들어왔나봐요.

낯가리긔님-캣츠아이님께서 세 편의 작품을 통해 느낀 구체적이고 다양한 감상, 책방장님께서 작품 <욕조들>을 통해 감지한 주제의식과 <렌즈없이 본다는 거>에서 느낀 순수함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곰곰님께서도 <나는 나무를 이해한다>를 통해 현대시의 난해함 속에서 소통 가능성의 작품과 개인적 경험까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마다 인상적인 작품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로운듯합니다.

 

2.「별 모양의 얼룩」을 읽으며 구체적으로 이 시집의 강점을 과감한 섹슈얼리티의 시적 차용이라 생각했습니다. 여성의 입으로 이러한 이야기(섹스,항문,임신,처녀,낙태,자궁 등-)를 꺼내기는 마냥 쉽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비롯해 많은 부분이 저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예로 다양한 소재와 주제 선정, 현대시의 난해성을 관류하면서도 미학성을 삼투하는 강점, 작품 속 골고루 드러나는 사적 서사와 공적 서사의 조화, 산문적 진술과 세련미의 담보, 완곡한 아포리즘의 전달 등이 좋았던 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는 저만의 문학적 푼크툼에 기반한 해석이었을 수 있지만, 분명 이러한 특징은 김이듬 시를 풍부하게 만드는 단초들이 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김이듬 시의 좋았던 점을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며 이야기해주세요. 또한 비평적인 관점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별 모양의 얼룩」에 드러난 김이듬 시의 단점(보완점)은 무엇인가요?

낯가리긔님-요약하자면 내가 생각한 김이듬시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정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캣츠아이-좋았던 점은 나는 나무를 이해한다,고야와 나의 5월,가릉빈가,조문객 등 외설적인 표현들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비유적인 시들이 좋더라구요.대부분의 시들에서 성찰을 많이 한게 느껴졌어요.어떻게보면 염세적이지만 그 감성이 느껴지는 시들이 좋더라구요.또 단점까지라곤 못하겠지만,저는 외설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것 들을 좋아하지 않아서읽으면서 좀 많이 놀라긴했어요.여성의 입으로 말하긴 쉽지 않은 주제라,용기있고잘쓴거라곤 생각했지만 비유법보단 직설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좀 아쉽긴 했어요.그리고 또 옛날에 나온 시라 그런지 한자 사용이 조금 많더라구요.한자어보단 우리말로 쓴 시들이 더 좋은것같아요.

책방장님-장점은 아무래도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고독감과 슬픔이 담담하면서도 강건하게 다가오는 작가의 에너지를 뽑고 싶구요. 아쉬웠던 것은 굳이 뽑어보자면 시각적 표현이 다른 감각적 표현에 비해 많게 느껴지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앗.. 그리고 더해서.. 왠지는 몰라도 시를 읽을 때 먼 관찰자로서 방관하고 조망하는 입장이 된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거리감이 어쩐지 양심에 찔리는 기분이 들어서 나중에는 묘한 괴로움이 들더라구요..

곰곰님-난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담담해서 차가움이 느껴지는데,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에는 어울리는 화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적나라한 성적인 표현들은 특히나 자기 몸을 잘 모르는 한국 여성분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낯가리긔님-캣츠아이님께서 느낀 김이듬 시의 장단점을 구체적 작품을 근거로 분석소를 포착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이 되는 지점이 많은듯합니다.

책방장님께서는 심상에 근거하는 단점과 표현론에 근거하는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으며, 대상과 작가의 묘연한 거리감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곰곰님께서 고민하시는 현대시의 난해성과 그 속의 리듬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지점이 많은듯합니다. 더불어 화법과 현대시의 '신체'에 대한 소고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다른분의 의견에 날카롭지만 애정어린 생각을 덧대어주시거나, 자신의 감상을 말씀해주시는 등 자유롭게 논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그로테스크, 데카당스, 충동과 같은 요소들이 혼재하면서도 이것이 결국 과감한 여성의 성적 충동처럼 변주되어 표출되는, 김이듬의 작품은 얼핏 보기에 페미니즘적인 듯 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의 입으로 과감한 성적 충동의 기표를 표출하면서도 이것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이듬은 “지금까지 몇백 편을 썼지만, 시를 쓸 때 ‘나는 페미니스트야, 나는 여성이야.’하고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라고 모 지면https://thepin.ch/knowledge/mT8Qi/ideum-interview 인터뷰에서 언급하며 작품에 페미니즘을 표면적 가치로 내걸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나 페미니스트야’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작품에 녹여내면, 2010년도 한국문학장은 ‘여성서사’가 주류였기에 다수의 옹호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것은 사뭇 인상적입니다. 개성적인 퇴폐주의와 과감한 성충동의 발현 속에서 페미니즘을 기치로 내걸지는 않는 그만의 완곡한 전략은 여성주의 담론을 획득하는 하나의 방식인 듯합니다. 다만 과감하지만 간접적인 이러한 방식이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설득력 있는 전략일까요? 아니면 이소호의 페미니즘/박상영의 퀴어 문학의 직접적 지향과 같이, 주제의식의 표출에 있어 보다 선명한 언술을 채택하는 것이 문학적 가치가 큰 것일까요?

낯가리긔님-요약하자면 페미니즘문학의 존재 방식은 직접적인것/완곡한것 중에 어느것이 효용있는지 입니다.물론 둘 다 가치있겠지만 토론장의 형성을 위해, 범박한 중도적 회색논리보다는 가능한 한쪽을 선택하여 답해주시기를 조심스럽게 권해드려봅니다!

캣츠아이-시 공사의뢰인에 페미니스트란 단어가 등장하긴 하지만,그렇다고 김이듬 시인이 페미니스트라거나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거나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지하스튜디오 고장난 엠블리파이어 등 폭력성을 드러나는 작품도 많고낙태,섹스,강간 등 보통의 여성시인들이 주로하지않았던 표현을 씀으로써 딱히 자세히 언술하지않아도 이미 김이듬이라는 시인만이 갖는 주제의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페미니즘/퀴어 문학처럼 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표출하는 것도 좋으나,간접적인 방식으로 여러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둘 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므로 어느것이 문학적 가치가 더 크다 이렇게 말할 순 없겠네요.둘 중 하나를 선택해 답해야 한다면 전 완곡한 것이요ㅎㅎ

책방장님-저는 직접적인 것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강렬하고 협상의 여지가 없는 극의 지점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반대쪽으로 시선이 향하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면 양쪽에 대한 정보가 쌓이게 되고 그렇게 자신의 신념이 근거와 논리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캣츠아이-올려주신 링크로 지금 김이듬 시인의 인터뷰를 보고있는데,인터뷰가 참 좋네요.일단 김이듬이 본명이 아니라는 것에 놀랐고 다시한번 이 사람은 성찰을 많이 하는 사람이구나 느꼈어요.

곰곰님-둘 다 장단점이 있고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상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그래도 선택해야 한다면 직접적인 것이 아직은 좀 더 필요하다 생각들어요. 물론 개인적으로 제가 행하는 건 완곡에 가깝습니다.

낯가리긔님-논의를 위해서나마라도 세 분이 저마다 한쪽 스탠스를 선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책을 상당히 꼼꼼하게 읽어주신 분도 계시고, 상당한 논리성을 통한 성찰을 보여주는 의견도 있으며, 익숙한 분야가 아님에도 열심히 참여해주시는 분도 계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것은 곰곰님과 같은 이른바 일반독자의 의견이라 생각합니다. 시인이 일반독자와 시작품에 익숙한 문학독자를 모두 포섭해야하는 과제를 갖는 존재라면, 난해한 현대시가 일반독자에게 어떠한 파문을 만드느냐가 현대시의 과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가릉빈가」, 「벌」, 「정동진 횟집」, 「덜미 잡고 놀자」를 비롯해 이번 작품집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분행(행갈이)가 덜 된 산문시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일상적인 사건, 인물을 등장시키고 여기에서 시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만의 특성은 아니지만, 김이듬의 이러한 작품들은 시의 영역 안에서 진술되면서도 수필과 같은 산문의 몸을 갖고 있기에 일종의 아이러니를 형성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30년대 대표적 시인/평론가인 김기림의 「길」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애초에 모 지면에 산문으로 발표되었으나 유종호 평론가는 이것이 시에 더 어울린다고 평하여 후에 작품 「길」은 수정되어 시로 발표되었습니다. 이렇듯 많은 문학작품에서 산문과 운문(시)의 경계성은 모호하고 해체되며, 근대를 관통하며 밀레니얼에 이르러서는 이제 현대시 속에서 완전히 무화되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김이듬/김기림 등의 작품을 참고할 때 우리가 시의 영토를 부박하게나마 구획화해보자면 그 국경은 어디에 있을까요?(산문과 시의 경계가 형식적으로 모호해지는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시(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낯가리긔님-요약하자면 김이듬 시집에 산문시가 많았는데, 어디까지가 시이고 어디까지가 산문일까요? 나아가 어떤 것이 본질적으로 '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캣츠아이-미리 문항을 주셔서 다행히 김기림의 길 작품을 먼저 찾아볼 수 있었네요.
공교롭게도 여기도 마지막 문단에 얼룩이란 단어가 등장하더라구요ㅎㅎ 많은 산문시들이 대부분 분행이 덜 된 형태가 많은데,어느것은 시고 어느것은 수필이다라고 딱 정하긴 어려운거같아요.요즘은 시인으로 등단하고 시를쓰면 그게 시인거 아닐까 싶어요.렌즈없이 본다는거라는 작품은 읽으면서 실화인가? 그럼 이건 수필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소설도 고전부터 여러형태로 변화해 왔기때문에 시의 형태도 여러가지 있다고 생각해요.황현산 교수가 비평에 썼듯 "취향으로 시를 읽는 자들은 제가 읽는것을 시라는 말로 반너머 이해하며,취향으로 시를 쓰는 자들은시라는 말이 반쯤 시를 써준다" 라는 말이 맞지 않나싶어요.

다만, ☆☆☆ 이후로 인스타감성 짧은 몇글자 내놓고 시라고 주장하는 인플리언서들도 많아서....그런건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책방장님-저는 이 질문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저도 확실히 ☆☆☆씨가 내놓은 시는 시가 아니라 일종의 광고 카피 같은 느낌이 강한데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되네요..

곰곰님-수필과 시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문학분류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떻게 보든 각자의 해석으로 보는게 아닌가 싶어요.
책방장님-곰곰님의 각자의 해석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낯가리긔님-세 분 좋은 의견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캣츠아이님께서는 등단이라는 관문을 넘어와 시를 쓰는 시인의 주관과 개성론을 존중해주시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의 범외인을 sns의 단형 시로 조심스럽게 주장해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황현산 비평가의 말을 인용해주셨는데,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처럼 다가와 좋은 문장을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책방장님께서도 마찬가지로 단형 시의 키치한 지점에 대해서 캣츠아이님의 의견에 공감해주셨습니다. 확실히 ☆☆☆ 시와 같은 작품이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님께서는 범주의 모호성은 공감하지만, 독자의 해석을 존중하는 독자효용론의 가치를 부각시켜 주셨습니다. 저로서도 질문은 쉽지만 답하기는 힘든 논의사항이었는데 생산적인 의견이 오가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곰곰님-확실히 인스타 갬성글은 시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긴 해요. 시대의 흐름을 이해못하는건가 싶기도 하구요, 별 생각이 다들긴 했어요.
캣츠아이-맞아요.특히 ☆☆☆이후로 그런글들이 더 많아졌죠.
곰곰님-다만 다른 범주의 글, 이라고 받아들이면 괜찮다 생각도 들어요. 의외로 ☆☆☆ 씨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저로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그들은 또 그들의 리그가 있고. 반대로 그들이 저같이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또 '너네는 너네 리그에 갇혀있구나' 싶을 것 같기도 하구요….
캣츠아이-네 공감할만한 문장은 잘 쓰지만,시라고 보기엔 애매하고 다른 범주의 글 이라고 생각해요ㅎㅎ


5. 표제작이기도 한 14p의 작품 「별 모양의 얼룩」은 전체 시집의 주제를 함축하고 관통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당위성은 이해되지만, ‘한 여자가 떨어지는’등 추락의 이미지가 과잉되고 타나토스 충동에 의존하여 퇴폐적 경향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집에는 죽음 충동(영미시인 실비아의 말² 처럼 궁극적으로 그 이면에서 오는 희망을 조준하는 것이겠지만)을 비롯해 프롤레타리아트적 존재에 대한 연민과 지지,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인의 포즈에 대한 메타시, 기성사회에 대한 전복적 사유와 같은 다양한 층위의 이미저리들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이 시집의 제목을 지어본다면, 어떤 이름을 달아줄 수 있을까요?(시집 안에 있는 작품들 중 하나를 선택해도 괜찮고, 시집에 없는 제목을 창작해도 좋습니다)

낯가리긔님-요약하면 별 모양의 얼룩이라는 제목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제목을 창작/수록작 중 선정해보자면 무엇이 될런지 입니다

캣츠아이-별모양의 얼룩,제목이 딱 꽂혀서 제목을 되게 잘지었다고 생각했어요.
내용은 제목을 읽고 생각한거랑 다른 느낌이었지만요ㅎㅎ 제가 짓긴 어렵고 시집안에 있는 시들 중에서 골라보면 퇴폐적인 작품이 많으니 작품중에 하나 고르면 "지하스튜디오 고장난 엠블리파이어"를 차용해 시집 제목부터 퇴폐적인 느낌으로 갔으면 어떨까도 싶네요.[방조와 가담의 차이에 관한 스퀀스]도 있긴하지만 이건 시집 제목과는 좀 거리가 먼거같아서...
아니면 "나는 내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이것도 좋을거 같아요.
퇴폐적이면서 서정적인 분위기가 제목에 다 들어있어서요ㅎㅎ

책방장님-저는 이 질문을 읽고 떠올랐던 이미지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 어둠 속에서 모호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이미지였어요. 여자는 웃고 있기도 하고 울고 있기도 한 얼굴이고요..

그래서 지어본 제목은 <나체의 무용>입니다..ㅎ

곰곰님-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했는데 ㅎㅎ..솔직히 말하자면 얼룩이 무엇을 말하는지 여전히 잘 느껴지지가 않아서요.그래도 제목을 생각해본다면,,,'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문제'

캣츠아이-다들 제목이 좋네요.
곰곰님-낯가리긔 님의 제목도 궁금합니닷

낯가리긔님-세 분 의견 무척 감사드립니다.😄

<지하스튜디오 고장난 엠블리파이어>, <방조와 가담의 차이에 관한 스퀀스>, <나는 내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모두 시집 제목으로 달려있는것이 쉽게 상상될만큼 좋은 제목들인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제목은 요즘 유행하는 문장형 제목과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아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섬세한 의견을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체의 무용>은 특히 김이듬의 다른 작품집에서 노래(세이랜)와 춤(무도)의 이미지가 다수 등장한다는 점에서 연결되면서도 섹슈얼리티(나체)까지 담아내는 매력적인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창의적인 의견 감사드립니다.

얼룩의 이미지가 여전히 얼룩으로 존재하기에 그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문제>라는 제목에서 김이듬에게는 강렬한 문제의식이 파생된다는 점이 시의성 있는 인상적인 제목인듯 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급하게 생각한거지만 지어본다면  그로기, 재와 천사와 음울한 라디오, 그로테스크, 댄싱 피버와 같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너무 허접해서 부끄럽습니다

6. 김이듬의 서사 속 광기, 충동, 분열은 그녀의 진술을 히스테릭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김이듬은 「히스테리아」라는 제목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엮기도 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히스테리적 주체를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언급은 아마도 인간의 광기와 고뇌, 절망의 배후에서 희망이 탄생한다는 강인한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같은 맥락에서 김이듬의 히스테리는 피투된 세계 속 존재의 반항이며, 그 뒤틀림이 만드는 반향이며, 기투성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일반독자를 비롯해 문학독자까지도, 우리는 그저 가장 강렬하게 현재의 텍스트를 인식하고 그 의미를 나의 위치에서 수용하는 현존재(dasein)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작가가 어쩌면 의도했을 ‘절망을 초월하며 탄생하는 긍정성’에까지 마음이 닿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이듬과 같은 퇴폐 문학(데카당스 문학-)이 일반 독자에게까지 긍정 의식을 환기하는 ‘적확한 전달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지 생각을 들려주세요. 또한 작가와 독자(혹은 타자성에 근거한 개인과 개인)의 생각이 본질적으로 100% 합치될 수 없는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시집을 읽으며 우리에게 어떠한 희망의 울림으로 다가온 작품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낯가리긔님-요약하자면 저희가 논의중 느낀 지점과도 맞닿아있는 질문인듯합니다. 어렵고 우울한 것이 결국 희망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있다면 어떻게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들 중 '희망'을 어떤 작품에서 환기했는지 입니다

캣츠아이-개인적으로 6번질문이 제일 어려웠어요ㅠㅠ확실히 퇴폐문학은 긍정적인 마음이 닿기 어려운거 같아요.시의 특성상 비판의식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소설보다 더 힘든점도 있구요.긍정의식을 환기하는 적확한전달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직설적인 표현보다 비유적인 표현이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요.희망의 울림(?)으로 다가온 작품은 아까말한 "나는 내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라는 작품이요. 제목부터 내용까지 전혀 희망적이진 않지만, 작품속 화자의힘든 상황이 그려지면서도 그 모습에서 동정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면 희망을 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또 다른 시 불안한재미에 나오는 '적당한 불안이 위로가 된다' 이런 느낌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책상에 불이 붙기 시작했고 나는 읽었던 행을 다시 읽었다] 라는 구절이 참 인상깊더라구요.

책방장님-저는 결국 공감을 얻어내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피폐할지라도 화자의 이야기에 나를 대입할 수 있으면 긍정의식을 좀 더 쉽게 환기시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저는 여름날 난로처럼 있다에서 마지막 구절인 뚜겅을 열고 기어나온다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거든요.. 솥 밑에는 난로가 있고 난로 밑에는 벼랑이 있다고 했는데도요..

곰곰님-작품이 어둡고 우울하더라도 그게 현실이 반영되었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전달한다면 희망의식도 가질 수 있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고, 지극히 소수들만의 삶이라고 느껴지면 희망 보다는 거부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제가 실용서적파라서 기억나는게 없다만 ,,,최근에 읽다만 '아픔이 길이 된다면'을 읽으면서 또 한 번 여러가지 현실문제들을 보며 '알고 싶지 않은데 알아서 이것 참 마음이 너무 무겁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다시 생각해보자 -' 정도 느꼈던 것 같네요.

낯가리긔-질문자인 제가 읽어보아도 다소 질문이 난해하지만 그럼에도 세 분 좋은 생각들을 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체로 공감의식을 중요하게 보아주신듯하여 저의 난해한 우문에 현답을 주셔 감사드립니다. 제시해주신 작품과 문장들 또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것들로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7.마지막 질문입니다. 시집을 읽으며 떠올랐던 여러분의 감상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여러분의 얼룩은 어떤 모양이었나요?

곰곰님-얼룩을 이해 못해서 ,, 약간 읭 스러운 질문을 드리자면, 표면적으로 의미하는게 담요의 얼룩인지, 핏자국인지,,궁금해요

캣츠아이-시를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계속 충격을 받았어요ㅎㅎ처음 읽었을땐 마냥 충격적이었는데 두번 읽고나서는 좋은 시들이 더 눈에들어왔던거 같아요.몇몇개의 시는 해설을 찾아보며 아 이게 이런내용이었구나하기도 했었구요.시집을 덮고나서 정재학 시인의 "결국 시는 이전보다 더 선명한얼룩을 간직한 채 자신에게 돌아와 쉬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비평을 보니 별모양의 얼룩도 또 다르게 읽혀지더라구요.저는 얼룩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단마음 속에 있는 얼룩이라 생각하고, 누구에게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지만 부모님과 싸우거나 하는건 더 오래남는거 같아요.

책방장님-저는 작픔 속에서의 얼룩을 남녀의 체액/소변/피 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 별개로 느낀 것은 살아가면서 모두가 흔적을 남기게 되잖아요. 그 흔적이 결코 깨끗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별로 보고자 하면 별로 보이듯 나의 얼룩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가리긔님-아마도 두 분의 답변이 곰곰님이 다소 의문스러웠던 부분에 대한 문학적 해답이 될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ㅎㅎ

곰곰님-두 분의 도움으로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자면 - 일단 저도 처음 시집을 읽기 시작하고 질문지를 보며 동공지진이 계속 일어났어요ㅎㅎ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읽어나갔던건 결국 현실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자주 접하는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이 읽어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룩은 결국 표면적이든 숨겨져있든 어떤 것을 오염시킨다는 의미인데, 그 얼룩들에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얼룩이 있다고 해서 삶을 나쁘게 판단하지 않고, 방장님 말씀대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구요, 오래 남더라도 그저 하나의 기록이지 나를 갉아먹도록 놓아두지 않아야 하는……

캣츠아이-곰곰님 긍정적인 마인드가 참 좋네요.
오늘 질문준비해주신 낯가리긔님,다양한 생각들나눠주신 책방장님과 곰곰님 덕분에 오늘 토론도 뜻깊은 시간이었어요ㅎㅎ 덕분에 많이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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